일본 에도시대에 아라이 하쿠세키(新井白石)는 신찬성씨록길전련(吉田連) 가전(家傳)으로 전하는 ‘임나 기문’을 ‘가야 기문’으로 개변하여 임나부(任那府)의 기원으로 설명했고, 하야시 다이스케(林泰輔)는 염승진(塩乘津) 설화와 숭신기를 연결하여 임나 일본부는 ‘대가야에 설치된 야마토의 일본부’라고 주장했다. 대일항쟁기 일본 식민사학 자들은 일본서기에 등장하는 임나를 가야와 동일시하여 일본서기의 임나 국명을 한국의 지명에 비정하였는데 이들의 임나=가야설은 지금까지 일반설이 되어있다. 스에 마츠 야스카즈(末松保和)는 임나흥망사에서 음상사(音相似)에 기반하여 일본서기 신공기에 나오는 ‘임나 7국’을 한반도 남부와 가야 지역에 비정하였다. 그의 지명 비정 을 재검토하면 일본서기와 일본서기에 인용된 ‘백제삼서’에 보이는 임나의 역사지 리적 특징과 한국 문헌의 ‘가야’와는 정합하지 않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광개토 대왕릉비와 강수열전, 진경대사탑비 등 한국 자료에 등장하는 ‘임나’ 관련 기록들도 기존의 연구에서처럼 임나가 가야를 뜻한다는 근거를 발견할 수는 없다. 「양직공도」 등 중국 자료에 보이는 임나도 마찬가지여서 이때의 임나는 대마도나 북규슈 등 백제의 해양진출과 일본 열도 진출을 보여주는 흔적이란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임나=가야설 은 재검토가 필요하며 더욱 심층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선도문화』 논문
2022.0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