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에서 영수사벽화묘 발견 초기에 요양 현지를 직접 고찰한 세 명
의 일본학자가 작성한 논문을 검토해보았으며, 그 중 두 편은 원문을 번
역하여 자료로 실었다. 원래 세 편을 모두 번역하여 실을 생각이었지만,
나머지 한 편인 하마다 고사쿠의 논문은 별도의 논문으로 작성하기 위
해 미루어두었다. 1921년 2월 야기 쇼자부로의 논문이, 3월에 쓰카모토
야스시의 논문이 학계에 발표된 뒤인 7월에 하마다 고사쿠의 논문이 발
표되었다. 그러므로 하마다 코사쿠는 앞의 두 논문을 비교검토하는 기
회를 가졌는데, 영수사벽화묘의 고구려 관련성에 대해서는 “그러한 점
으로부터 생각해 보면, 이 문제는 오늘에 있어서도 거의 결정하기 어렵
다고 할 수 밖에 없다. 단지 고구려설이 조금 더 온당하지 않을까하고
생각할 뿐이다.”28)고 결론짓고 있다. 연구와 논쟁의 여지를 남겨두면서,
고구려 벽화고분으로서 더 검토해보자는 취지가 아니었던가?
앞으로 2년 뒤면 영수사벽화묘가 발견된 지 100년이 된다. 그때까지
라도 그 벽화고분의 성격은 물론 그 고분이 있었던 현재 요양 일대의 우
리 고대사에 대해 제대로 된 연구가 이루어져야 하지 않을까? 한국의
역사 연구자들은 한없이 바쁜 것이다.
본고의 역자들은 앞으로 다양하고 심층적인 방법으로 영수사벽화묘
에 대한 연구 및 논의가 활발히 일어나기를 기대한다. 필자들의 연구능
력 부족 등으로 검토가 미진한 부분은 앞으로 계속되는 연구를 통해 바
로잡으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