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3.1혁명과 민족대표 33인에 대한 저평가와 그 폄훼 원인을 밝
히는 데 목적을 두었다. 이를 위해 글쓴이는 이 글에서 국권회복 이전 3.1
혁명과 민족대표 33인에 대한 평가와 인식을 살펴보았다. 1919년 3월 1
일 이후 3.1혁명과 민족대표 33인에 대한 평가와 인식은 민족주의 세력과
공산주의 세력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민족주의 세력은 3.1혁명을
혁명이라고 규정하면서 민족대표에 대해 ‘현인’ 또는 ‘한민족사를 되살린
인물’들로 평가하였다.
반면, 공산주의 세력은 1923년 무렵까지는 민족주의 세력과 거의 같
은 입장이었다. 하지만 소비에트 연해현 공산당 고려부 기관지 『선봉』의
1925년 3월 1일자 기사를 시발로 ‘실패한 부르조아민족운동’이라는 평가
로 완전히 바뀌게 되었다. 이제 3.1혁명은 실패한 부르조아 민족주의의
마지막 단계로, 민족대표 33인은 “몽매무지하고 계급의식이 없는 종교
가”로 폄하되었고 3.1혁명 기념식은 폐지되었다.
이러한 인식은 「민족해방운동에 관한 논조」(1928. 3)에 이은 「조선문제
에 대한 코민테론 집행위원회의 결의(12월테제)」(1928. 12)로 공식화되었
다. 12월 테제는 ‘민족주의자들의 분열과 탈락’, ‘토지혁명 투쟁과 노동자
계급 헤게모니의 부재’ 등이 3.1혁명의 실패 원인으로 제시되었다. 이후
한국 공산주의 세력은 이를 비판 없이 그대로 수용하여 프로레타리아혁
명 이론으로 채용하였다. 이러한 인식은 공산주의 세력의 3.1혁명에 대한
기본인식으로 고정화되었다.
결론적으로 3.1혁명에 대한 폄하는 공산주의 세력의 3.1혁명에 대한 기
본인식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다.
『선도문화』 논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