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의 오랜 역사에서 ‘한국⋅조선⋅고려’의 국명(國名)은 수백 년에서 수천 년의 간격으로 반복 사용되었다. 이를 통해 후대 국가가 선대 국가의 영광과 전통을 이어받았 음을 강조함으로써 내부 결속을 다질 수 있었고, 대외적으로도 계통성과 역사성을 확인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부여는 북부여로부터 남부여에 이르는 동안 기본적으로 ‘부여’라 는 국명을 계속 유지했다. 부여는 강력한 리더십을 가진 세력이 등장하거나 고대 국제관 계에서 신흥 패권국가의 등장으로 국가의 위기가 왔을 때마다 변화를 선택했다. 이것을 연구자는 ‘분국(分國)’이라 정의하였다. 분국이란 기존의 권력자가 신진세력에 의해 축출되어 죽임을 당하는 것이 아닌, 양위(讓位)를 한 뒤 자신의 추종 세력과 다른 지역으 로 옮겨 왕실을 유지하는 방법이다. 이것은 고대사회에 알려진 제후국과는 다른 개념이 며, 종중(宗中)에서 지파(支派)가 분가하며 이룬 일족(一族)인 문중(門中)의 관계와 유사 하다. 이와 관련하여 분국의 조건을 제시하였다. 첫째, 건국 과정은 평화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둘째, 기존 왕실과 새 왕실은 혈연적 또는 계통적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셋째, 분국을 하는 국가는 반드시 새로운 곳으로 이주하여 건국해야 한다. 넷째, 국명(國名)의 연속성이 있어야 한다. 다섯째, 본국과 분국은 불평등한 관계가 아니다. 이 가운데 평화적 합의와 절차가 제일 중요한 조건이다. 이러한 분국은 부여에서 처음 시작된 것이 아니라, 환국으로부터 분국한 신시배달국의 건국 과정이 분국의 기원으로 볼 수 있으며, 부여가 이 전통을 계승 발전시켰다고 할 수 있다.
본 연구를 통해 두 가지 사항을 제시하였다. 하나는 북부여를 제외한 동부여와 서부 여의 건국 과정을 분국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대소왕 사후 고구려에 투항한 대소의 사촌 동생과 1만여 명의 옛 동부여 유민들은 연나부 관할지에서 새로운 부여(낙씨왕계)를 건국하였는데, 연구자는 그동안 부여국명이 ‘방향 + 부여’로 불렸던 관례를 따라 ‘서부여’로 칭하자고 제안했다. 아울러 [부여분국도]를 통하여 부여사 전체 의 계보를 정리했다.
『선도문화』 논문
2022.1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