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시아 학계 고대사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접점은 단연 낙랑군의 위
치이다. 이 낙랑군의 위치가 어디냐에 따라 그 당시의 역사해석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문제는 매우 첨예하게 대립한 것이 사실
이다. 필자는 이런 기본입장에서 한군현 설치 당시부터 시작하여 근대에
이르기까지 한군현 관련 문헌을 검토해 본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게
되었다.
사료를 근거로 하여 한군현 관련 문제를 종합적으로 정리해보면 한군현
의 설치 초기에는 당시 패수가 있었던 현재 중국의 동북지역인 하북성 지
역에 위치하고 있다가 차이나계의 세력이 점점 커지면서 한군현 역시 점
점 커지는 것을 볼 수 있다. 특히 패수의 위치가 바뀌면서 한군현의 위치
도 바뀌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즉 현재 난하는 고대의 패수였고 북위시기
에 이 패수라는 강 이름이 없어졌는데 6세기경 당시 지리학자였던 북위의
역도원이 고구려 평양성이 패수의 북쪽에 있다는 말을 듣고 이 패수를 근
거로 하여 낙랑군을 현재 중국 요녕성 요양지역으로 이동시켰다. 이때 낙
랑군과 평양의 등치관계가 설정되었으며, 그 후 명나라시기에 현재 한반
도에 평양이라는 지명이 보편화되면서 낙랑군도 이 지역으로 옮겨온 것
으로 확인되었다. 이런 변화는 원래 한군현이 설치된 지역에서 시작하여
강 이름과 지명을 따라 오늘날 한반도 평양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이런 것
을 증명하듯이 『삼국사기』의 기록을 보면 한반도 어디에도 한군현이 있었
다는 기록은 없는 것으로 확인이 된다. 그러므로 현재 한반도에 한군현이
있었다는 것은 14세기 이후부터 시작된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런 변화과정을 알려주는 사료들은 매우 많은데 그동안 학계에서 이를 주
도면밀하게 분석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물론 학계에서 현재 한반도 평
양지역에 한군현이 있었다는 단선적인 주장만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다양한 의견들은 1920년대 단선적으로 한반도로 고정되면서 오
늘날까지 이른 것이다. 그러므로 향후 학계에서 더욱더 치밀한 보완 연구
를 통하여 한군현을 제자리에 놓고 한국 고대사를 연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