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도문화 21권
고구려 외교의 성격과 규모 대한 분석-외교가 무역과 전쟁에 끼친 영향-이정훈
705년을 존속한 고구려는 25개국과 239번 사신을 견래(遣來)했다.
이 대부분이 중국에서 명멸한 왕조와 한 것이다. 백제와는 한 번도
교환하지 않았고. 신라와는 6번 견래했다. 고구려가 가장 많이 사신
을 견래한 나라는 북위-당-수-동위(東魏) 순이다. 그러나 고구려와 공
존한 기간을 토대로 한 사신 견래 빈도(頻度)로 따져보면, 동위-당-북
위-수(隋) 순이 된다.
고구려는 북위와 연합해 북연(北燕)을 무너뜨렸기에 북위와의 관
계를 잘 유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중계무역을 독점해 국부를 늘이
고, 중국 남조 왕조와도 교류해 북위-고구려-남조가 솥발처럼 맞서는
삼각구도를 만들어냈다. 이 구도 속에서 고구려는 강국이 되었다.
서위에서 나온 북주가 동위에서 나온 북제를 무너뜨리고, 그러한
북주에서 수(隋)가 나오면서 고구려는 위기를 맞았다. 고구려는 수나
라가 남조와 돌궐을 정복하는 것도 허용해 삼국구도를 만들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 그리고 벌어진 동아시아 패권 전쟁에서 고구려는 국
력이 달려 당나라에 패망했다. 당나라는 지구전을 펼쳐 고구려의 전
술도 무력화했다. 외교의 성공이 고구려의 전성시대를, 외교의 실패
가 고구려의 패망을 가져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