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승의 유명한 중수필 [딸깍발이]는 비록 짧은 글이지만 매우
대중적인 글이다. 그러나 그 내용을 보면 유학에 대한 비판적 이해가
없이 단편적인 인상에 기반한 글이라 부정적 영향력이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의병 활동이나 모화 사상에 대한 이해는 큰 오해를
낳고 있다. 어문학자로 알려진 그가 왜 이런 글을 남겼는가라는 문제
는 제대로 음미되지 않았다. 이는 그가 추구했던 ‘과학적’ 국어학과
이에 따른 한자 혼용론자로서의 그의 삶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선비 또는 딸깍발이는 한자 문화의 담당자요 주역이자 그 내용인 유
교 문화의 주역이었다.
이희승은 스스로가 [딸깍발이]란 글을 썼을 뿐만 아니라 그 스스
로가 지조와 학문을 갖춘 이상적 인간상인 딸깍발이로 알려져 있으
나 사실과 매우 다르다. 서울대 교수와 조선어 학회 사건으로 옥고까
지 치렀다는 형식적 기준을 갖추었다. 그러나 그는 경성제대의 ‘과학
적’ 국어학을 그대로 이어받아 주시경과 조선어 학회의 민족주의적
전통을 이데올로기로 배척하였다. 그 결과 한글 문화를 억눌러 온 모
화 사상을 그대로 승인하는 무비판적인 태도를 취하게 되었다. 한글
전용 운동이 가진 복합적 측면과 사상사적 의의에 대해 알지 못하였
다. 그가 일생을 통해 추구했던 ‘과학적’ 국어학의 한자 혼용론을 옹
호하려는 의도에서 [딸깍발이]에서 선비의 모습을 겉모습으로만 보
거나 왜곡하기도 했다. 이희승을 통하여 식민지 국어학 연구가 1945
년 이후에도 그대로 주류를 이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