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재 신채호는 천부경을 위서라 하지 않았다"
▪ "한민족의 원형을 찾을 수 있는 가능성이 천부경이라는 텍스트에 내재"
▪ "주역이 이성적 사유의 체계라면 천부경은 신명과 하나되는 수련체계"
△기조강연하는 박성수 명예총장(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
지난 7월 13일, 국학연구원은 서울역사박물관 대강당에서 "천부경의 철학과 역사적 재해석"이라는 주제로 제6회 학술대회를 개최하였다. 이 날 학술대회에서 기조강연을 맡은 박성수 명예총장(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은 "천부경 위서론자들이 단재 신채호의 『朝鮮史硏究草(동아일보 1925년)』에 인용한 이 글은 이름 그대로 논문 초고를 모은 것이고 완성된 글은 6년 뒤인 1931년「조선상고사』와「조선상고문화사」였다”라며 “몇몇 단어의 연구만으로 위서론이 성립되는 것은 아니다” 라고 밝혔다.
△ 첫 번째 발표자 이근철 강사(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
이어 이재원 교수(한국체육대학교)의 사회로 총 6개의 연구논문이 발표되었다. 첫 발표자인 이근철 강사(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는 <천부경의 三에 관한 仙道적 고찰>에서 “천부경 속의 ‘삼’에는 우주의 근본 원리인 ‘一’이 ‘천ㆍ지ㆍ인’으로 상징되는 세 가지 요소들로 나뉘어져 서로 유기적으로 조화를 이루어 다양한 역할들을 함으로서 모든 만물을 생성하고 구성하며 변화를 이끌어내는 삼원론의 논리를 담고 있다” 고 주장하였다.
△ 두 번째 발표자 선미라 강사(전남대학교)
두 번째 발표자인 선미라 강사(전남대학교)는 <천부경의 기호학적 의미> 에서 "'서양 우주론 이전에 한국 우주론이 있었고 그것이 천부경이다‘라고 말하는 것이 기호학적으로 가능하다." 라며 "이 연구로 보면 한민족의 원형을 찾을 수 있는 가능성이 천부경이라는 텍스트에 내재되어 있다"라고 말하였다.
△ 세 번째 발표자 민영현 강사(경성대학교)
세 번째 발표자인 민영현 강사(경성대학교)는 <『소도경전본훈』과 천부경의 철학사상> 에서 “천부경은 一氣와 三神으로부터 와서 다시금 三神과 一氣에로 돌아가는 과정을 지극히 간단한 81자로 압축적으로 담고 있다” 라며 “오직 하나에로 돌아가, 성통공완을 이룰 것을 사람들에게 밝힌 것이다”고 주장하였다.
△ 네 번째 발표자 정경희 교수(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
네 번째 발표자인 정경희 교수(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는 <『천부경』의 도상화-『천부경』에 의한 복희 팔괘·하도의 해석> 에서 “천부경은 상수학 전통에서 하도나 하도의 원리를 팔괘로 표현한 복희선왕팔궤도는 주로 평면적 ‘圓型’으로 이해되어왔다면 천부경의 구수론(십수론)으로 팔괘ㆍ하도를 분석해보면 ‘팽이 型’과 같이 입체적 도상으로 이해된다”고 밝혔다.
△ 다섯 번째 발표자 김용환 교수(충북대학교)
다섯 번째 발표자인 김용환 교수(충북대학교)는 <천부경에 나타난 한얼태교의 원리> 에서 '천부경=태교원리+인간의식 형성과정'을 나타낸 표현으로 81자의 문자 중 '一積十鉅無櫃化三'(일적십거 무궤화삼)과 '大三合六生七八九運'(대삼합육생칠팔구운) 구절을 집중 분석하였다. 김 교수는 이중 '一積十鉅無櫃化三'을 "一이 쌓여서 十이 되는데 상자가 없어서 三으로 변한다"라고 직역했고 이를 "한얼이 열달 동안 성장하니(一積十鉅), 자궁이 없어지고(無櫃), 사람으로 변했다(化三)"라고 의역하였다.
△ 여섯 번째 발표자 조남호 교수(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
여섯 번째 발표자인 조남호 교수(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는 <천부경의 연구사정리(3)-천부경과 주역> 에서 “주역과 천부경에서는 천지인에 대한 사고가 들어있지만, 그 지향점은 다르다” 라며 “주역이 점을 통한 이성적 사유의 체계라면 천부경은 신명과 하나되는 수련의 체계” 라고 주장하였다.
이번 학술대회는 국학연구원이 2006년 6월부터 천부경을 주제로 개최한 세 번째 학술대회로서 총 16편의 학술논문이 발표됨에 따라 그동안 위서론에 휩싸여 제대로 연구되지 못하였던 천부경을 학문적으로 자리매김하였다는데 그 의의가 있다.
■ 천부경
천부경(天符經)은 천제(天帝)의 환국(桓國)에서 입으로 전해내려온 글이다. 환웅 대성존이 하늘에서 내려온 뒤 신지혁덕(神誌赫德)에게 명하여 녹도문(鹿圖文·사슴발자국모양문자)으로 기록하였는데, 고운 최치원이 일찍이 신지의 전서(篆書)로 쓴 옛 비석을 보고, 다시 문서를 만들어 세상에 전한 것이다. 천부경이 세상에 처음 알려진 것은 ‘환단고기’를 편집한 계연수가 1916년 묘향산 바위에 새겨진 글씨를 탁본해 1917년 단군교당으로 보낸 뒤부터다. 1920년 도교사상가이자 정신철학자인 전병훈(1857~1927)이 저서 ‘정신철학통편’에 천부경해제를 실은 것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천부경 해제다. 그 후 1921년 계명구락부에서 발행한 잡지 ‘계명’4호에 한별(생몰연대 미상)이 천부경을 해제했고, 1922년 유학자 김택영(1850~1927), 1923년 석곡 이준규(1899~1923), 1930년 단암 이용태(1890~1966) 등의 천부경 해제가 잇따라 나왔으며, 일제말 독립운동가 이시영, 홍범도, 여운형 등도 천부경을 소개하거나 천부경을 찬양하는 글을 남겼다.
글: 윤관동@국학연구원 ykd0909@ube.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