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조선과 일본 양국의 객관적인 사료를 바탕으로, 대마도가 한⋅일 양국의 단순한 경계 지대를 넘어 오랜 기간 조선의 국가 질서에 편입된 번속국이자 영향력 하의 영토로 인식되었음을 논증하였다. 특히 1868년 메이지유신 당시 대마도주가 메이 지 정부에 제출한 봉답서(奉答書)에서 ‘지난 수백 년간 조선의 번신(藩臣)으로서 굴욕을 겪었다’고 토로하며 스스로 조선의 번속국임을 자인한 사실에 주목하였다.
지정학적으로 한반도와 일본 열도를 잇는 교량 역할을 수행해 온 대마도는 고대부터 신라ㆍ고구리ㆍ백제 삼국과의 유기적 관계 속에서 경영되었으며, 고리(高麗) 시대에는 대마도주가 ‘구당관(勾當官)’이나 ‘만호(萬戶)’ 등의 관직을 수명(授命)받아 고리의 속령 이자 속주로 인식되었다. 이러한 영토적 통념은 조선 전기에 이르러 더욱 공고해졌다. 세종 대 기해동정(대마도 정벌) 이후 조선 조정은 대마도를 경상도에 예속된 ‘동번(東 藩)’이자 자국 영토의 연장선으로 규정하였고, 이는 등 관찬 지도에 명확히 투영되었다.
이와 같은 영토 인식은 일본 측 사료를 통해서도 교차 고증된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가 조선 침략을 목적으로 제작한 와, 19세기 일본 정부가 오가사와라 제도 영유권을 주장하기 위해 미국에 제시한 하야시 시헤이의 불어판 모두 대마도를 조선의 영토로 채색ㆍ표기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