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구석기 고대북유라시아문화의 본령인 ‘하늘⋅머리(뇌) 중심의 한생명-공생문 화’는 신석기∼청동기 흑수백산문화에 이르러 ‘선도제천문화’로 지속되었다. 이러한 문화 전통이 기반하고 있는 기학적 세계관인 삼원오행론에서는 ‘삼원오행형 제천 표상’ 이자 이상적인 제천시설로 ‘삼원오행형 제천단(십자-5단형 기⋅화⋅수⋅토⋅천부단)’ 을 제시한다.
흑수백산문화의 개시 이래 후기신석기 선도제천문화의 극성기였던 배달국시기가 되자 제천산의 ‘산정 삼원오행형 제천시설’이 등장하였다. 대표적으로 백두산 신시의 ‘(삼원오행형) 제천사’, 우하량산지의 ‘삼원오행형 제천사(모신묘)’를 들 수 있으며, 이는 단군조선시기 백두산 신시의 ‘삼원오행형 제천단’과 성자산의 ‘삼원오행형 제천석 성’으로 계승되었다. 반면 중원지역에서는 이 전통이 ‘음양오행형 오악제’로 변질되어 정치적 서열화의 도구가 되었다.
단군조선의 와해 이후 이러한 전통은 한반도의 진한-신라사회로 이식되었다. 신라초 북부여계 박씨왕실에 의해 백두산 신시의 ‘산정 삼원오행형 제천단’이 태백산 제시에 재현된 것이다. 신라초 태백산의 ‘산정 삼원오행형 제천단’으로 대표되는 바, 상고기의 삼원오행형 제천 전통은 흑수백산계 전통을 온전히 계승한 형태였지만, 중고기 이후 불교 및 유교의 도입으로 선도제천문화가 선불융합화하며, 더하여 유교와도 절충되는 변화속에서 물리적 형태와 정치적 의미가 변모되어갔다. 곧 중고기 이후 선불융합 및 유교절충이라는 이중의 굴절을 겪으면서 등장한 삼산오악제와 명산대천제는 흑수백산 계 전통에서 멀어져 정치군사제도화하거나 정치적 서열성이 강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