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세계를 어떻게 이해하고 인식하는가를 탐구하는 일은 동아시아 철학의 핵심 과 제였으며, 한국 사상은 이에 관한 논의를 독자적인 사유 체계로 발전시켜 왔다. 그러나 오늘날 기술 문명의 급격한 발전과 인공지능의 대두는 인간 인식의 본질과 주체성에 대한 근원적 성찰을 요청하고 있다. 이에 본 연구는 한국 고유의 사유 전통이 담긴 『 천부경(天符經) 』 의 텍스트를 분석함으로써 새로운 인간관을 정립할 수 있는 실마리를 모색하였다.
기존의 『 천부경 』 연구는 주로 우주론적 도식이나 수리(數理) 상징체계를 해명하는 데 집중해 왔으며, 수리 전개의 과정에서 인간 인식이 담당하는 능동적 역할은 충분히 주제화되지 못하였다. 본고는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여 『 천부경 』을 인식론적 관점에서 재독해할 가능성을 검토하였다. 이를 위해 먼저 본고의 핵심 개념인 ‘삼사성환 (三四成環)’을 둘러싼 구두(句讀)의 문제를 검토함으로써 독법의 근거를 제시하고, 이 개념이 특정 구두법의 채택에 좌우되지 않고 ‘삼과 사의 순환적 연동 구조’를 지시하는 조작적 개념으로 성립할 수 있음을 논증하였다.
본고의 비교 작업은 영향 관계를 실증하는 데 목적을 두기보다 구조 비교의 방법론에 기초한다. 이를 통해 퇴계 이황의 미발ㆍ이발(未發ㆍ已發) 순환 구조, 율곡 이이의 이기 불상리론(理氣不相離論)과 단계적 수기론, 다산 정약용의 역학(易學)적 사유가 『 천부경 』의 수리 구조와 어떠한 구조적 상동성(相同性)을 이루는지 확인하고, 그 철학적 함의를 해명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독해에 따르면, ‘삼기(三氣)’는 고정된 우주 질서에 관한 존재론적 분류가 아니라 인간의 심(心)이 현실을 능동적으로 구성하는 인식의 틀로 재정의될 수 있다. 천ㆍ지ㆍ인의 세 층위는 인식의 원리적 근거와 현실적 작용의 차원, 그리고 양자를 주체적으로 매개하는 인간 의식이 역동적으로 관계하는 구조로 이해할 때 그 철학적 함의가 온전히 드러난다. 아울러 ‘삼사성환’은 단순한 수리적 기술을 넘어 분화와 수렴 사이를 왕래하면서 인식을 질적으로 심화하는 주체적 순환 구조로 독해될 수 있다. 이러한 순환 구조는 퇴계 심학의 미발ㆍ이발 순환, 율곡의 이기 결합 구조, 다산의 과정적 역학과 구조적으로 상응하며, 인간을 능동적인 가치 창출의 주체로 규정하는 사유 유형이 『 천부경 』과 한국 사상 전통에 공통으로 내재해 있음을 드러낸다.
이처럼 『 천부경 』을 인식론적 텍스트로 독해할 때, 우주론에 치중되어 온 연구 지평은 인간 중심의 실천철학적 영역으로 확장될 수 있다. 나아가 이러한 순환적 전환 구조는 기술 문명의 위기 속에서 인간의 주체성을 회복하는 『 천부경 』인간론의 토대이자, 홍익 인간(弘益人間) 이념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국학적 논의의 가능성을 제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