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주의 항일독립운동은 근대로의 이행기에 외세의 침범에 대항하여 의
병운동과 독립운동을 전개하며, 1894년부터 1945년까지 줄기차게 이어
졌다. 홍주 항일운동은 초기에는 화이론에 바탕을 둔 척사의병의 성격이
강했으나, 점차 후기로 접어들면서 의병은 유림이 주도한 의병진이라 하
더라도 척사론에만 매몰되지 않고 국제정세를 수용하는 현실인식을 보여
주었다. 이러한 정신은 이후 일제강점기 김좌진과 한용운의 독립전쟁으
로 계승되었다. 또한 문화적 충격과 전통질서 및 가치관이 와해되는 가운
데서도 신교육을 수용하여 활발한 계몽운동도 전개하며 새로운 근대의식
을 자각적으로 성장시켜 나갔다. 특히 김복한이 보여주었던 ‘事功’의 정신
은 사회사상의 측면에서 높이 평가할 만하다. 그는 외세의 무력 침탈 앞
에서 성리학의 의리정신이 수행해야 될 궁극적 목표는 우선 나라의 위기
를 구해내는 일이며, 이를 위해서는 학파와 학설의 차이를 초월하여 모든
힘을 모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야말로 도맥을 지킬 수 있는
최후 방편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이러한 사공의 수행은 남당이 가장 높
은 경지였다는 자부심과 함께, 자신의 행위도 스승이었던 남당이 수행했
던 사공을 계승한 것이라는 확신과 자의식을 굳게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근대성이 지향하는 창조적 파괴는 기존의 모든 것을 버리는 것이 아니다.
개화의 대척점에 섰던 위정척사는 그런 면에서 근대성을 거부한 것이 아
니다. 제대로 된 근대성, 올바른 근대성을 형성하기 위한 과정으로 볼 수
있다. 홍주의 정신에서도 이러한 근대성의 모습들을 찾기는 어렵지 않다.
사공의 정신이나 인본주의 사상, 남당의 대의론과 붕당타파, 충과 역의
분별, 공사의 구별 등은 근대사회가 형성되는데 중요한 원리로 볼 수 있
다.
『선도문화』 논문
2019.04.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