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C. 3세기~B.C. 1세기 무렵 단군조선의 와해 과정에서 단군조선의
많은 엘리트 세력이 한반도·일본열도 방면으로 이주하였다. 북부여 왕실
출신의 선가 파소·박혁거세 세력은 한반도 남쪽 경주 분지로 이주, 仙桃
山 ‘壇(祭天壇)·廟(祭天廟)’에서의 ‘마고제천’을 통해 사상·종교적 주도
권을 장악하였고 이로써 6촌 세력의 규합에 성공, 사로국을 개창하고 진
한의 맹주로 도약하였다.
선도 전통에서는 단군조선이 중국 한나라에 밀려 와해된 근본 원인을
음양오행론이라는 현상(물질)에 치우친 가치관이 단군조선으로 유입되어
단군조선의 삼원오행론, 곧 본질(생명氣, 밝음)과 현상(물질)을 하나로 바
라보는 전통적인 가치관을 와해시켰던 때문으로 본다. 단군조선·북부
여계 엘리트 선가였던 파소·박혁거세는 이러한 인식에 따라 중국문화에
대한 경계와 방어를 표하고 단군조선의 선도문화에 대한 강력한 수호 의
지를 천명하였다.
단군조선의 선도 복건론은 ‘符都復建論’으로 개념화되었다. ‘符都’란 ‘천
부사상의 중심지’라는 뜻으로 단군조선을 의미하는데, 이때의 단군조선
은 ‘영토·정치’의 차원이 아니라 ‘사상·문화’의 차원, 곧 ‘선도문화’의 차
원이었다. 고구려 ‘多勿主義’류의 ‘단군조선의 구토 회복론’과 차별화되는
단군조선의 사상·문화적 정체성 회복론으로 그 사상사적 가치가 다대하
다.
박혁거세가 추진한 선도 복건 정책의 중심에는 ‘백두산의 신시(제천단
시설)를 계승한 태백산 신시 중창’ 사업이 자리하였다. 단군조선의 삼신
산이었던 태백산(현 백두산)과 백두대간으로 연결되어 있는 남태백산(현
태백산)을 백두산을 대신한 새로운 삼신산으로 지목, 그 정상에 제천단을
중창하였다. 이는 당시 진한 일대에서 펼쳐진 새로운 차원의 마고제천문
화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백두산 신시의 직접적인 계승을 표방하
면서 행해진 남태백 신시에서의 제천은 단군조선계 유민들의 깊은 공감
을 이끌어내었고 이러한 이념성은 진한12국을 결집시키는 핵심 명분으로
작용, 사로국을 진한12국의 맹주로 우뚝 서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