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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활동

『선도문화』 논문

선행연구에서 한국사에서 말갈을 어떻게 인식해 왔는지 살펴보았고, 낙
랑과 백제와의 관계 고찰을 통한 말갈의 위치를 비정해 보았으며, 또한
한국사에서 말갈의 위상과 그 역할에 대해서도 정립한 바 있다. 이제 다
른 민족과의 관계사 연구를 통해 말갈의 정체성 확립과 만주지역의 역사
를 정리할 필요가 있다. 본격적인 관계사 연구에 앞서 사전 연구로 관계
사 연구를 시도하는 것이 말갈연구에 어떤 도움이 되고, 한국사와 동북아
시아 역사 연구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접근하는 것이 좋은
지에 대한 시론적인 차원의 연구가 필요한 것이다.
우리 역사에서 말갈의 존재는 고대부터 근·현대까지 이어져 온 친연성
과 기록으로 남겨진 관계사 그리고 동일한 역사 공간에서의 고고학적 발
굴 성과, 당대의 역사인식 등 우리 역사로 편입할 수 있는 요인을 많이 갖
고 있다. 특히 발해사를 한국사로 온전하게 편입하려면 발해 건국 시조
인 대조영의 출자관계부터 비롯되는 건국세력의 형태, 즉 고구려 유민이
냐 아니면 속말말갈인이냐에 따라 역사 귀속 문제가 생긴다. 이렇게 혼란
스러웠던 것은 당대의 기록인 『구당서』와 『신당서』의 기록 내용이 다르기
때문이다. 『구당서』에서는 ‘고구려 별종’으로 되어 있고, 『신당서』에는 ‘속
말말갈인’으로 되어 있다. 동일한 시대의 기록이 왜 이렇게 상반된 결과
를 초래하게 되었을까를 생각해 보면 대조영의 출자가 두 가지 성격을 다
갖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즉 ‘고구려 별종’과 ‘속말말갈인’을 합치면 ‘말
갈계 고구려인’이 된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지배계층은 고구려 유민이고,
피지배 계층은 말갈족이라고 하는 이원화된 구조는 의미가 없었던 것이
다. 고구려인이 고구려를 계승하고자 발해를 건국하였던 것이다. 다만 고
구려 영토가 아닌 지역에는 토착민들이 살고 있었을 것이다. 그 토착민들

중에서 말갈을 비롯하여 소수민족이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들도 이미 고구려인이거나 발해인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거란족

이든 여진족이든 서로 고구려를 계승했다고 자처했던 것이다.
중국은 동북공정을 통해 말갈족이 세운 발해는 중국의 소수민족이 세운
중국지방정권의 역사라는 논리를 펼치고 있는데 우리가 계속 말갈족이
아니라 고구려 유민이 세운 나라라고 주장해 보아야 설득력이 없다. 오
히려 역사적 사실을 그대로 인정하되 그 사실이 주는 의미를 새롭게 해석
함으로써 우리 역사에 유리하게 적용하는 것이 더 현명한 길이라고 생각
한다. 지금부터라도 말갈은 이민족 오랑캐로 여길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
로 수용하여 한민족을 이루는 다양한 종족 중 하나이고 이들은 분명 고구
려인이고 발해인으로서 현재 대한민국을 구성하는 주요한 구성요소가 될
수 있음을 천명해야 될 것이다. 즉 다시 말해서 말갈은 한국사에서 일정
한 지분이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말갈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발해사를 온전하게 한국사로 편입하기
는 어렵다. 역사 해석의 일대 전환이 필요한 것이다. 이젠 더 이상 말갈의
실체를 부정하는 논쟁을 지속해서는 안 될 일이다. 그렇게 서기전 삼국의
성립 이전부터 수 없이 등장하는 관계사 기록을 무시하면서까지, 또 고고
학적 발굴 성과를 외면하면서까지, 고대부터 이어져 왔던 역사인식과 역
사적ㆍ민족적 친연성을 배제한 채 실체를 부정하는 논쟁은 무의미하고
불필요한 일이 되었다는 것이다.
대조영은 고구려를 계승하기 위해서 발해를 건국하면서 동생 대야발
을 시켜 단군조선의 역사서를 쓰게 한다. 이것은 그들의 뿌리의식이 단군
조선에 미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것은 달리 말하면 말갈인
들의 의식 속에는 그 뿌리가 단군조선에 있음을 알려 주는 내용이기도 하
다. 이것은 또한 한반도와 만주지역에 걸쳐 있었던 모든 민족들의 뿌리가
단군조선에 있음을 사서의 기록이나 자의식 차원에서 스스로 주장하는
내용으로 볼 때 알 수가 있고 단군조선의 뒤를 이은 그들은 고구려 및 발
해의 구성원이자 후예이기도 한 것이다.
또한 한국사의 불편한 진실인 한사군 문제도 말갈의 위치를 밝혀냄으로

써 낙랑군 등 한사군이 한반도가 아니라 오늘날 요서지역에 있었다는 것
을 입증할 수 있다. 또한 낙랑군이 있던 위치가 고조선의 중심지였다고
한다면 고조선이 한반도 내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한반도를 비롯한 만주,
요동, 요서지역까지 그 강역이 미칠 수 있음을 알 수 있으며, 고구려와 백
제의 초기 건국지역을 가늠할 수 있고, 특히 요서백제의 근거가 될 수도
있다.
그런가하면 최소한 7세기말 신라인들의 세계관은 삼국이 아니라 사국
체제가 되어야 한다. 신라가 백제를 병합하고 고구려를 멸망시킨 후 옛
고구려인들과 백제인들을 회유하기 위한 일환으로 군제를 개편할 때 중
앙군인 구서당의 편성 시 신라계 3개, 고구려계 3개, 백제계 2개, 말갈계
1개로 구성했는데 여기서 주목할 것은 제6서당으로 말갈국민으로 편성한
‘흑금서당’의 존재이다. 앞 선 시대에 왕조국가로 오랜 기간 이름을 날렸
던 부여와 가야는 배제가 되고 말갈계를 구서당이라는 왕의 친위 부대에
편성했다고 하는 것은 그 동안 알고 있었던 말갈에 대한 관념이 얼마나
헛된 것인가를 보여주는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 말갈은 한국고대사를 이해하는 데 주요한 변수가 되어 왔고 한
국사에서 말갈을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 역사가 확장될 수도 있고, 축
소될 수도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역사는 과거의 사실도 중요하지만 그
사실을 어떻게 수용하고 해석할 것인가도 중요하다. 그래서 사관이 중요
한 것이다. 가치관을 배제하고 역사를 판단할 수는 없다. 역사적 사실에
집중하되 그 사실이 주는 의미와 영향을 고려하여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적극적으로 해석하여야만 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것이 오늘을 사는 우

리에게 말갈이 의미있게 다가 오는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관심에 비해
남겨진 사료는 많지 않다. 말갈족은 유목민족이다 보니 스스로 남긴 역사
서가 없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그들이 세운 발해왕국에 대한 역사서가
현존하지 않는다는 것이 오늘날 이해관계에 있는 모든 나라들이 자기네
들 역사라고 주장하는 단초를 제공하였다. 이제 기존의 사서 중심의 연구

로는 한계가 있고 제대로 된 연구를 할 수 없다.
따라서, 말갈의 민족적 특성을 살펴보고 그러한 특성이 다른 북방민족
들과 어떻게 다르고 어떻게 같은지, 그리고 상호 존재인식은 어떠했는지
등을 정확하게 살펴보아야만 제대로 된 관계를 설정할 수 있다. 사람들은
만나면 관계부터 정립하려고 한다. 역사도 그 주체가 사람이기 때문에 관
계부터 정립이 되어야 그 뒤 후속작업이 가능한 것이다. 말갈의 민족적
특성으로 볼 때 한민족과 얼마나 친연성이 있는지 그리고 다른 여러 민족
들과 관계를 어떻게 형성하였으며, 각각 그 연원은 어디에 두고 있는지
살펴봄으로써 한국 고대사의 주된 공간적 배경이 되어 주었던 만주의 역
사를 이해하고 전대의 고조선시대와 그 이후 한국사의 전개 과정이 어떻
게 논리적으로 연결되는지 우리는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말갈은 지금까지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거나 관심을 가졌다고 해도
피상적이거나 단편적인 내용에 그쳤다. 하지만 고대 동북아시아 역사에
서 말갈이 안 걸리는 데가 없다. 한ㆍ중ㆍ일 역사에서 말갈의 존재를 제
대로 파악하지 못하면 그 시대의 역사를 온전하게 이해를 할 수 없게 된
다. 특히 한국은 발해의 역사를 온전하게 한국사로 편입하려면 말갈 문제
는 반드시 해결하고 가야 된다. 그리고 그 동안 한국사 연구에 있어서 만
주가 공백이었다. 말갈사가 풀려야 만주사가 풀리는 것이다. 한국 고대사
의 주된 공간적 배경이 한반도를 비롯한 만주지역이었다. 그런데 그 동안
한반도에 국한해서 역사연구가 이루어진 것이 사실이다. 이제는 북방으
로 눈을 돌릴 때이다. 한반도에 갇힌 역사관이 아니라 동북아 전체를 대
상으로 확장시키려면 만주가 그 가교 역할을 할 것이고 그 만주의 주인이
말갈이었다. 그러므로 만주의 주인으로서 말갈사를 정확하게 이해를 하
게 되면 한국사의 원류와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즉 말갈사가 해결이 되
면 만주의 역사가 정립이 된다. 이렇게 정립된 만주사를 토대로 향후 한
국사의 원류를 밝히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또한 한국고대사의 체계를 정
립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동북아시아의 역사 체계를 확립한다면 오래된

역사적, 민족적 갈등들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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