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 초기에 연왕 한광을 요동왕에 임명하고 또 장도를 연왕으로 하여 계에 도읍을
정한 일을 검토하면 요동은 현재의 요동으로 보기 어렵다. '사기' 조선열전에서 나오는
출새와 입새의 의미는 위만조선과 패수 사이에 형성된 일종의 완충지역이었음을 알려
준다. 출새와 입새는 한의 침공선으로 출구와 입구를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한과
위만조선의 전쟁은 외신의무 불이행이라는 명분이 외면상 있지만 보다 근본적인 것은
한의 팽창정책에 원인이 있다. 한의 위만조선 침공로는 발해 연안도로를 사용했을 것으
로 보이며 한의 위만조선 침공은 가을에 시작되었다. '사기' 조선열전의 열구는 요하구
로 인정되며 왕검성 동쪽은 큰 강이 있었을 것이다. 동쪽에 큰 규모의 강이 있고 남쪽은
해안과 인접하며 서쪽에도 강을 낀 지역은 요하 인근에서만이 찾을 수 있다. 왕검성
재평양론자들은 대동강 남안의 낙랑토성을 낙랑군 치지로 인정한다. 그러면서 대동강
북안을 따로 설정하여 왕검성을 위치시킨다. 그렇다면 대동강을 사이에 두고 왜 왕검성
과 낙랑군 치지가 따로 설정되어 있는지 해명해야 한다. 대동강 북안의 위만조선 수도인
왕검성에 낙랑군 치지를 두지 않고 위만조선의 수도와 관계없는 그 남안에 별도의
낙랑군 치지를 두었다는 것은 매우 어색하며 타당성도 결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