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신라 천년고도 경주 낭산을 한국선도적 관점에서 고찰한 연구이다. 초기
낭산(신유림)은 신라의 대표적인 소도(蘇塗)로 나타나는데, 삼산오악제가 시행되면서
중악, 삼산과 같은 최고의 지위에 오르게 된다. 진평⋅선덕여왕대에는 제석신앙의 성행
으로 제석신앙의 성소인 수미산으로 전화한다. 본 연구에서는 이러한 변화의 이면에
‘선도제천문화’와 ‘선⋅불습합적 제석신앙’이 자리하고 있었음을 고찰하였다.
낭산(신유림)은 소도신앙인 전불시대칠가람지 중 하나였는데, 실성왕대에 이르러
김씨왕족의 성산으로서 자리잡게 되었다. 낭산은 중고기 김씨왕실의 왕경오악의 중악
으로 기능하였고 중대에는 삼산의 핵심이 되었다.
삼산오악제는 한국선도기학의 ‘삼원오행론’을 사상적 기반으로 하며 홍산문화 우하
량 모신묘의 십자형 구도를 제도적 원형으로 하는 ‘선도제천산’제도였다.
배달국의 선도제천에서 출발하여 단군조선-북부여-신라로 이어진 ‘선도제천문화’가
중고기 이후 김씨왕실에 이르러 김씨족의 삼신산이었던 낭산에서 그대로 체현되었다.
김유신의 ‘호국삼신녀’설화는 선도제천의 신격이 우주의 근원적 생명력을 의미하는
마고삼신에서 호국적 의미의 삼신녀로 비소(卑小)화한 전승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 ‘호
국삼신녀’전승은 낭산이 ‘선도제천산’임을 알려주는 중요한 가치를 지닌 기록이다.
또한 김씨족의 왕권강화를 위한 이데올로기로 기능한 제석신앙은 배달국 이래 ‘선도
제천문화’의 상징인 삼성신앙(환웅신앙)이 불교 내 호법천신신앙으로 화한 선⋅불습합
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선덕여왕의 장지가 조영되고, 통일 후 낭산에 창건된 사천왕사는 ‘선⋅불습합적 제석
신앙’의 성전사원으로 호국사찰의 중심터전으로 자리매김한다.
제석신앙의 원형을 선도제천으로 규정할 수 있는 요소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 제석
신앙이 성행한 진평왕대∼신문왕대와 ‘선도제천산’제도인 삼산오악제의 시행 시기가
동시대라는 점이다. 둘째, 제석신앙의 신격인 제석이 선도제천의 신격인 삼성(환웅)의
불교적 변형태라는 점이다. 셋째, 사천왕사의 가람배치에 나타난 오방사상이 한국선도
기학의 핵심인 삼원오행론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이다. 요컨대 낭산에 나타난 ‘선도제천
산’제도와 ‘선⋅불습합적 제석신앙’의 배후에는 한국선도의 삼원오행사상에 기반한
‘선도제천문화’가 자리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