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국내학계에서는 말갈문화에 대한 연구가 거의 없었다. 일부 있었다고 하더라도
대부분 고구려나 발해문화와 비교해 공통점이나 차이점 등을 소개하는 수준에 불과했다.
발해의 기층문화인 말갈문화는 향후에 금과 청제국을 세운 여진족이나 만주족 문화
의 원류가 되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에 그 연구의 필요성이 대두되어 왔지만 사료
부족 등의 사유로 연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사실 사료 부족은 합당한 이유를
찾은 것에 불과하고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반면에 주변국들의 연구 동향은 다르다. 러시아 및 중국 학계에서는 말갈문화에
대한 연구가 활발했으며, 일본 학계에서는 발해문화가 오호츠크문화에 미친 영향을
중심으로 말갈문화 연구를 지속적으로 해왔다.
국내학계에서 말갈문화에 대한 연구가 상대적으로 소외된 주된 이유는 연구자들이
많이 없다는 이유도 있지만 더 중요한 요인은 우리 학계의 연구 경향이 발해문화가
고구려 계통임을 강조하는 반면에, 중국 학계에서는 발해문화가 고구려 계통이 아님을
강조하기 위해서 말갈문화를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국내학계에서는 발해
사를 온전하게 한국사로 편입하기 위해서는 중국의 입장에 맞서서 발해의 말갈문화를
부정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까지 학계에 보고된 고고학적 발굴 성과와 후속 연구 결과에 따르면
발해의 유적 및 유물에서 말갈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컸음을 부정할 수 없다.
기존 연구자들 중 일부는 말갈문화라는 개념을 실질적으로 말갈인들이 남긴 유적
및 유물로 증명된 것이 아니라 오랜 기간 고고학적 발굴을 통해 상층부, 즉 지배계층과
는 다른 이질적인 문화 계통을 의미하는 고고학적 문화의 통칭이라고 하였다. 이것은
고고학적 관점으로 본 개념이다. 그런가 하면 실제로 발해라는 국가와 말갈이라는 종족
집단 간의 민족 개념이 분명하게 고고학적 문화로 구분이 가능한 가에 대한 검증 없이
두 문화의 차이를 종족 집단 간의 차이로 인식해 민족의 분리로 단정 지어왔다. 이
또한 기존 말갈문화 연구의 문제점이라고 할 수 있다.
말갈문화에 대한 제대로 된 연구가 이루어지려면 우선 말갈문화의 개념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러시아가 최초 말갈문화 연구를 할 때 극동지역이라고 일컫는 아무르강
유역과 연해주지역을 중심으로 발굴한 결과를 토대로 말갈문화의 개념을 정립하였다.
고구려 또는 발해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덜 미쳤던 지역이기 때문에 말갈문화가 온전
하게 보존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말갈 집단의 영역은 요서 및 요동지역, 한반도 중,
북부지역, 송화강 유역(속말말갈)과 두만강 유역(백산말갈)까지 다 아우르고 있기 때문
에 시⋅공간의 개념을 확대 적용하여 말갈문화의 개념을 다시 정리하였다.
이렇듯 고구려 이전부터 말갈문화가 생성되어 발해를 거쳐 후대인 여진족까지 말갈
문화가 지속적으로 이어져 왔다는 점에서 말갈문화는 발해문화 연구에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말갈문화의 기원과 고구려 또는 발해문화와의 공통점과 차이점
을 살펴봄으로써 역사뿐만 아니라 문화적인 관점에서도 그 관계를 확인할 수 있고,
또한 후대 역사인 여진족의 문화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파악해 봄으로써 동북아시
아 문화에서 말갈문화의 위상을 재정립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