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는 이글에서 민족대표 33인에 대한 학계와 일반인 일부의 폄하 논란의 원인을 밝히기 위해 국권회복 이후 민족주의 세력과 공산주의 세 력의 평가와 인식을 살펴보았다. 해방공간에서 3.1혁명과 민족대표 33인 에 대한 평가와 인식은 서로 대립되는 양상을 보였다. 학원 강사 설민석 등의 민족대표 33인에 대한 폄하는 공주산주의 세력의 주장에 큰 영향을 받은 한국의 이른바 진보적 역사학자들의 주장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이 이글에서 밝혔다. 공산주의 세력의 3.1혁명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은 “3.1혁명은 부르조아 민족주의의 최후 단계로 민중의 계급적 자각으로 공산주의 운동이 민족 독립투쟁의 주류가 되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민족대표 33인에 대해 공 산주의자들은 “이적행위자’ 또는 ‘인민배반자’라는 극단적 평가와 인식을 갖고 있으며, 임시정부에 대해서도 ‘반인민적 정부’라고 규정하였다. 이 는 현재 북측 정권의 평가와 인식으로 이어졌고, 북한의 3.1혁명의 역사 는 역사적 사실과 달리 김일성 일가 중심으로 재구성하였다. 이러한 시각 에서 3.1혁명은 실패하였으며, 그 원인이 공산주의 세력과 김일성의 부재 때문이라는 것이 북한의 ‘움직일 수 없는’ 해석이다. 사실 한국근대 민족 운동은 민족주의 세력·아나키스트 세력·공산주의 세력·종교 세력 등 으로 구성된 다양한 주체들이 전개하였다. 이 점에서 북한의 3.1혁명과 민족대표 33인에 대한 기술은 근본적으로 역사 왜곡이라 하지 않을 수 없 다. 이러한 북한의 3.1혁명에 대한 평가와 인식은 지수걸 등이 참여한 『3·1민족해방 운동연구』 에 그대로 반영되어 3.1혁명과 민족대표 33인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의 큰 원인이 되었다. 이는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쳐 설민석과 같이 극단적으로 주장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선도문화』 논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