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는 ‘살(煞)을 풀다’라고 알려져 있는 현행 ‘살풀이’의 의미 재고를 통 해, 살풀이가무악의 담당계층이 화랑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가능성 을 발견하고자 한다. 현행 살풀이는 승무와 더불어 한국의 가장 대표적 인 전통가무악으로서 전통예인들의 수준 높은 기예가 담겨 있다. 전통예 인들은 화랭이, 재인, 광대 등으로 이들의 연원은 신라사회의 화랑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본고에서는 살풀이의 연원을 신라 화랑의 향가 ‘도솔가’ 에서 새롭게 찾고, 도솔가와 화랑의 연관성을 밝힘으로써 현재까지도 살 풀이가 화랭이 집단에서 연희되는 점에 주목하고자 한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나타난 두 도솔가를 살펴보면, 신라시대의 도솔가의 의미는 신라최초의 가악이자 화랑이 주도한 국행천신제의의 종 합예술이었다. 당시 부족국가를 병합한 신라는 각 부족의 제천의식을 수 용하고 이를 불교의 세계관과 결합하여 통치의 정당성을 강화하고, 장차 삼국통일을 위한 정치사상적 기반을 마련하고자 하였다. 이 과정에서 신 라사회에 퍼져있던 불교의 미륵신앙이 토착신앙과 습합되었으며, 도솔가 는 도솔천 미륵불의 현현이자 삼국통일의 주역이었던 화랑이 국행 천신 제의를 담당하며 태평성대를 기원하는 제신가무악(祭神歌舞樂)이었다. 신라시대 화랑의 도솔가는 진골귀족으로서 화랑이 가졌던 정치적 위상 과 종교적 지위를 보여준다. 그러나 고려 중기이후 화랑파와 불교파는 김 부식을 중심으로 한 유교파와 극렬하게 대립되다가 중앙 정권에서 점차 세력을 상실한다. 이후 배타적인 성격의 유교가 조선의 건국이념이 되면 서 화랑파와 불교파는 정치적 지위를 완전히 상실하고, 화랑은 최하층 천 민계급으로 전락하여 종교적 기능만을 담당하게 된다. 이들은 고려후기에 악을 담당하는 계층으로써 법적으로 신분이 세습되 고 정치·사회적인 지위를 제약받는다. 그러나 이들은 조선 최고의 종교 예술가 집단인 세습무부 집단을 형성하며, 관·군·민을 넘나드는 전방위적인 활약을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신라시대 화랑계층이 국행 천신제 의에서 올리던 도솔가는 도솔풀이 무가와 도솔풀이시나위 음악, 그리고 도솔풀이춤으로 전승되어 판소리, 산조와 살풀이춤의 모태가 되었다. 이 로써 신라시대 ‘화랑’의 ‘사뇌가’ 형식의 ‘도솔가’는 현재 ‘화랭이’ 재인집단 의 ‘시나위’ 형식의 ‘살풀이’로 전개되어 왔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선도문화』 논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