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중국의 ‘요하문명론-장백산문화론’ 정립 과정에서 백두산 서
편 고제단군중 가장 전형적인 홍산문화계 고제단으로 지목, 전면 발굴이
이루어졌던 만발발자 유적은 B.C.4000년~A.D.600년 무렵, 곧 배달국
~고구려시기 한민족의 주족인 맥족계의 선도제천문화가 성립·변천되어
가는 과정을 집약적으로 함축하고 있는 더없이 귀한 유적이다. 유적은 제
천·주거·무덤시설로 이루어졌는데 제천시설이 중심이며 나머지 시설은
부속시설에 해당한다. 제천시설은 다시 1차 시설 ‘3층원단(모자합장묘)·
방대’, 2차 시설 ‘선돌 2주·적석 방단·제천사’로 나뉜다.
만발발자의 1차 및 2차 제천시설은 크게 보아 B.C.4000년~A.D.600
년 무렵(정식 발굴을 거쳤을 뿐아니라 가장 넓은 시기값을 지닌 만발발자
유적의 시기를 기준으로 함) 요동·요서·한반도의 ‘환호를 두른 구릉성
제천시설(3층원단·적석단·나무솟대·제천사·선돌·고인돌류)’ 계통
으로 중원지역에서는 전혀 나타나지 않는 형태였다.
중국측의 만발발자 유적 발굴은 애초 ‘요하문명론-장백산문화론’을 증
명하기위한 목적에서 시작되었지만 결과적으로 동북아 상고문화의 기원
과 계승 관계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었다. 첫째, 1980년대 이래 요
서 중심으로 이루어진 동북아 상고사 연구를 요동 중심으로 돌려 놓았다.
둘째, 중원문화의 기원이 배달국 요동~요서 문화였음을 보여주었다. 셋
째, 중원문화가 배달국문화의 본령인 선도제천문화의 전형을 제대로 전
수하지 못하고 지역문화화하였음을 보여주었다. 결과를 수용할 수 없었
던 중국측은 만발발자 유적중 제천시설 부분을 은폐하며, 더하여 1990년
대 발굴조사되었던 백두산 서편 고제단군 전체를 은폐하게 된다
『선도문화』 논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