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도문화 22권
조선말 김항 정역사상의 역학사적 의의-양재학
조선조 말기, 충청도 연산 땅에서 태어난 김항은 후천개벽사상의
최고 이론가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젊어서 가문의 영향을 받아
문장 다듬기와 예학에 힘썼으나, 스승인 연담(蓮潭) 이운규(李運圭)를
만나고서부터 학문의 방향을 바꾸었다. 이때부터 줄곧 역학에 깊이
심취하였고, 나중에 붓대 하나로 전통의 사유를 뛰어 넘는 정역(正
易)을 지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김항은 복희팔괘와 문왕팔괘에서 정역팔괘로 넘어가는 이유와 과
정에 ‘시간’을 도입한 다음에, 선후천 전환의 문제를 하도낙서로 설명
하고 있다. 낙서가 선천이라면 하도는 후천인데, 기존의 음양오행으
로는 선후천 전환의 필연성을 포착할 수 없었던 까닭에 체용론을 도
입했다. 하지만 정역사상이 말하는 체용은 성리학의 체용론과는 그
외연과 내포가 다르다. 성리학에서는 불변하는 존재를 본체, 변화운
동하는 것을 작용이라 했다. 이러한 본체와 작용의 관계는 절대로 변
화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는 성리학의 사유와 주역(周易)의 세계관을 완전히 뒤집어엎
었다. 본체와 작용의 관계가 역전되어 본체가 작용으로 바뀌고, 작용
은 본체의 자리로 돌아간다는 체용의 전환을 얘기한다. 이는 전통 형
이상학에 대한 일종의 혁명이다. 그것은 사유의 혁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시간의 근본적인 전환을 통해 이루어지는 자연의
본질적 혁명을 겨냥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