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도문화 제31권>
이 글은 한반도에서 출토된 동경과 관련하여 일정 수준의 연구성과에도 불구하고 방제경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개념과 계보 및 형식분류 등 종합적 이고 체계적인 검토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인식에서 비롯되었다. 이에 삼한시기에 한정하여 지금까지 확인된 방제경을 대상으로 분석하여 한반도 방제경의 출현과 변천과정을 밝혀보고자 하였다.
방제경(倣製鏡)이란 용어는 대체로 기원전후한 시기에 중국의 한경(漢鏡) 을 모본(模本)으로 이를 모방하여 만들어 일명 ‘본뜬 거울’이라고 설명된다. 특히 기원 전후에서 3세기 이전의 삼한시기에 걸쳐 한반도 영남지역에서 주로 제작되었는데 낙동강 유역인 대구, 영천, 경주, 김해지역으로 변ㆍ진 한의 유력한 소국에서 제작된 것으로 여겨진다.
삼한의 발전과정에서 대외교류는 하나의 중요한 축으로, 기원 전후에서 3세기 이전까지 변ㆍ진한에서 제작된 방제경은 중국과의 관계 속에서 시기 별로 제작양상에도 영향을 미쳤다. Ⅰ기는 1세기 전후 사로국이 초기국가로 성장하던 시기로, 낙랑군으로부터 유입된 한경을 모방하여 대구, 영천지역 에서 재지화한 초기 중권문계와 연호문계인 ⅠA1∼ⅠA4, ⅡA식이 처음 출현하게 되었다. Ⅱ기는 1세기 후엽에서 2세기 전엽으로 사로국을 대신하 여 경남 남해안 일대에 걸쳐 성장한 변한에서 등장하게 된다. 후한경의 영향 을 받아 새로운 변화를 준 연호문계의 ⅡB, ⅡC식이 유행하는데 김해지역 구야국의 독창적인 요소가 합쳐진 창작품이라 할 수 있다. Ⅲ기는 2세기 중엽에서 후엽까지로, 동북아지역의 정치적 혼란 속에서 방제경은 나름대 로 문양과 제작기법 등에 변화를 보여준다. 이전의 ⅡB와 ⅡC식이 존속하지 만 새롭게 창조된 삼한식 방제경의 진일보한 특징을 보인다. 이후 국제교역 을 통해 구야국이 경제적으로 성장하자 신분과 경제적 부를 표시하는 후한 경이 새로운 상징으로 대체되며 방제경은 사라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