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휼의 목적은 본질적으로 공생이다. 진휼은 군주의 기분에 따라 그때그때 행해지는 일과성 시혜에 그칠 수도 있지만, 체계적이고 일관성 있게 시행되면 국가정책이 된다. 이는 공생에 대한 확고한 사상적 바탕을 기초로 할 경우에만 가능할 것이다.
삼국시대 진휼을 분석한 선행연구들은 유학을 기초로 한나라 동중서가 제창한 천인 감응설을 진휼의 사상적 배경으로 보았다. 그러나 이 시각은 천인감응설이 도입되기 전에 있었던 진휼의 사상적 배경을 설명할 수 없다. 차이나(China) 문헌을 분석한 결과 천인감응설의 실체도 공생 정신이 아니었다. 천인감응설에 따라 왕이 베푼 선행과 덕행은 사면, 감선, 인재 추천, 간언 청취 등이어서 백성들을 굶주림에서 구제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천인감응설은 왕이 안정적으로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기본 이론 이었다.
선도사상은 인간을 하늘의 밝고 맑은 기를 받고 태어난 존재로 본다. 모두가 같은 기를 받고 태어났으니 인간은 서로에게 소중하며 평등한 존재이고, 공생은 공동체와 개인 삶의 기본 가치였다. 공생 정신은 진휼로 발현되었는데, 선도사상의 홍익인간 정신이 건국이념이었던 단군조선에 진휼이 있었다. 단군조선 건국이념을 계승한 삼국 에도 진휼이 있었다.
삼국시대 진휼은 생명을 구하는 식량제공이 가장 중요한 방법이었다. 천인감응설에 기반한 차이나의 진휼이 재이현상을 초래하는 군주의 실정을 회피하는데 초점을 맞춘 것과는 전혀 다른 면모였다. 생명을 존중하고 공생하는 선도적 진휼과 군주의 권력유지 에 초점을 맞춘 유교적 진휼은 그 출발점이 확연히 달랐다. 선도사상의 핵심인 홍익인간 사상은 국가차원에서 펼쳤던 진휼의 사상적 배경이었다.
고대 한국에서는 홍익인간이라는 공생정치가 국가 경영 기본원리였다. 현대 자본주 의사회가 지속가능한 체제로서 기능하기 위해 공생이 필요조건임은 이제 주지의 사실 이다. 지속가능한 생존을 위한 공생은 단순한 상상의 산물이 아니다. 한민족 역사문화 속에서 공생은 역사의 산물이었고 선도적 진휼을 통해 그 일단을 확인할 수 있다.
현대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국가정책으로 진휼한다. 재난정책과 복지정책은 공생 정신을 제도적으로 반영한다. 그러나 구체적인 실천은 전반적인 국민 의식 수준과 정책 결정권자에 따라 달라진다. 홍익인간의 공생 정신이 이 시대에도 온전히 발현된다면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
『선도문화』 논문
2023.0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