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도문화 제31권>
단재 신채호는 한국사에서 평양 연구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었다. 그것 은 역사지리 연구의 어려움을 간파한 것이었다. 일본이 식민주의사관의 일 환으로 심어준 반도사관 등의 영향으로 패수를 지금의 대동강으로, 고대 평양을 지금의 북한 평양으로 인식함으로써 고구려 평양성뿐만 아니라 단군 조선과 위만국의 왕검성까지 지금의 압록강 이남으로 설정, 민족의 강역을 반도 안에 갇히게 하였다. 그 뿐만 아니라 한사군도 한반도 안에 설정, 식민 지배의 역사성을 강조함으로써 역사에 대한 피해의식이 여기에서부터 기인 한다.
고대 평양은 고유 명사라기보다는 도읍지로 할 만한 넓은 평야지역을 일 컬었던 일반명사일 가능성이 높다. 이것은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기록 으로 본 고구려 천도의 역사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말갈은 고구려를 구성하는 주요 종족 중 하나로 고구려가 건국되기 전부 터 존재했었고, 특히 고구려 초기 건국지에 정착해서 살고 있던 말갈집단은 갈등도 있었지만 고구려에 흡수되어 그 이후 고구려의 주요한 군사자원이 되어 주었고 고구려가 멸망하자 고구려를 계승하여 대진국, 곧 발해를 건국 하게 이른다.
이러한 발해는 고구려를 계승하기 위해서 장수왕 때 고구려 수도였던 평 양으로 도읍지를 옮기게 되는데, 그곳이 바로 발해 3대 문왕 때 옮긴 도읍지, 중경현덕부다. 이것은 발해 5경 중 하나이며, 요나라 때는 동경요양부로 지금의 요령성 요양지역에 해당된다.
이와 같이 고대 만주지역에서 발원한 국가들은 평양지역을 거점으로 삼았 는데, 대표적인 나라가 고구려가 있고, 고구려의 정통성을 계승한 발해가 있다. 고구려 장수왕이 천도한 평양성과 발해 문왕이 천도한 중경이 지금의 요양으로 같은 곳이었다. 고대 평양성을 매개로 고구려와 발해 그리고 고구 려의 구성원으로서 발해 건국의 주체이기도 한 말갈의 위치를 헤아려 볼수 있다.